기자탐방
대구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 탐방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기사입력 2018.07.18 17:42 | 최종수정 2018.07.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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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가 위치한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하빈(何濱)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물 河에 물가 濱. 즉 낙동강 물줄기와 맞닿은 곳. 묘리(廟理) 묘동(廟洞)은 사당 廟를 말하는 것으로, 사당이 있는 동네이다.


대구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도 육신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발걸음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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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는 문화해설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역사적 사건과 인물, 극적인 이야기, 주변의 유적지 분포-을 갖추고 있어 해설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육신사는 삼촌에게 왕권을 빼앗긴 어린 왕 ‘단종’ 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주동자들인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잔혹한 고문화 죽음, 그리고 멸문지화였다. 그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인들은 노비로 떨어졌다.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朴珣)의 아내 성주 이씨가 그때 복중에 유복자를 품고 있었다. 성주 이씨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관비로 삼으라는 명이 있었다.


그녀가 출산해서 보니 아들이었고, 이를 고하게 되면 박팽년의 후대는 끊어지고 마는 것이었는데, 마침 집안의 여종이 비슷한 때에 출산하게 되니 딸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아이를 바뀌었고, 박팽년의 유일한 혈손은 외조부와 여종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때으 이름은 박비(朴裨). 박비가 17세 되던 해에 마침 박비의 이모부 되는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처가를 찾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때는 성종때로 사육신이 재평가 되던 시기라, 이극균은 박비에게 자수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렇게 박비의 존재가 알려지고, 성종은 그를 용서한 후, 일산(一珊)이란 이름과 함께 사복시정이란 벼슬을 내렸다.


후일 박일산은 후사가 없던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고 달성의 묘동에 99칸의 종택을 짓고 자리잡았다. 세월이 흘러 박일산의 손자인 박계창이 충정공 박팽년 선생의 제사를 받들고자 준비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섯 영혼이 함께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른 다섯 분들의 제사를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사당의 절의묘이고, 지금의 육신사이다. 일시루하고도 하는 태고정은 그에 딸린 정자 건물로 1479년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161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보물 제 55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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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홍살문 입구 연못에는 여름이면 연꽃이 피어 아름답고, 구월까지 목백일홍이 만개하여 고즈넉한 고택마을에 한껏 운치를 더한다. 충절의 기상과 스토리와 빼어난 풍광이 있는 육신사, 꼭 가볼 만한 유적지이다.



대구학교사랑폭력예방 서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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